풀내음풀뿌리운동메타블로그

 *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A4 13장이란 분량이 나왔다. 한꺼번에 싣기에는 읽기가 너무 지겨울 듯하여, 세 번에 걸쳐 시리즈로 싣고자 한다. 전체 목차는 아래와 같다.

-.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 단비 이야기
-. 조직형성과정
-. 모임의 내용
-. 모임의 위기와 극복
-. 회원 참여과정과 구성
-. 갈등의 발생과 극복
-. 회원들의 변화
-. 앞으로의 전망



아줌마들의 즐거운 수다를 통해 건강한 지역사회를 꿈꾸는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우연한 기회에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에 대한 자료를 접할 수 있었다. 처음 접한 단체이지만, 이름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모임이 내 관심을 끈 것은 사무국과 상근자 등을 가진 ‘공식적’(?) 단체라기보다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자발적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모임이 그리 흔한 편은 아니지만, 내심으로는 이런 모임들이 정말 많이 만들어져야 풀뿌리운동이 활성화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많이 반가웠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이 모임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보니, 대부분이 안다고 대답했다. “나만 모르고 있었네.”라고 생각하며, 어떤 모임이냐고 물어보니 <환경정의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 조직・운영하는 모임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이상하다. 내가 잘 못 알았나? 그런 것 같지 않고, 순수 자발적 모임이라고 봤는데”라고 생각하며 그냥 지나갔다.

이 모임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음에서 주최한 「2008 풀뿌리들의 수다」라는 워크숍에서였다. 당시로는 낯선 ‘bar camp’ 진행 중 나와 같은 조에 오현정씨가 있었고, 자신을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전에 이 모임을 알고 있다고 내게 설명한 사람들이 모두 잘 못 알고 있었던 거다. <환경정의시민연대> 내의 소모임은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오현정씨와 내가 속한 소모임은 (지금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역에서 하는 활동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었다. 그런데, 에게서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에게서 나옴직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나름 풀뿌리운동의 ‘포스~’가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명함을 받고 한 번 찾아뵙겠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실제 찾아가 인터뷰를 한 것은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시점이 되었다. 물론, 그 중간에도 다른 모임에서 몇 번 만나기는 했지만...

인터뷰는 그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사무실이 따로 없었고, 또 오현정씨가 집에서 품앗이를 세 시까지 해야 했고 그 이후에는 어린 둘째 딸을 돌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외간 남자’(?)에게는 좀 어색했지만, 오현정씨에게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집이 바로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요 모임장소였기 때문에 비교적 공식적 장소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글이다. 그러나 이 모임에 대해 심층적으로 조사한 글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글의 내용은 주로 이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오현정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오현정씨의 입장에서 소개하고 설명하는 글이고, 또한 이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오현정이라는 조직가의 조직화 과정과 참여자와 스스로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글에서 밝히지는 못하지만,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늘날 모습은 분명 오현정씨 개인의 공과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현정씨와 다른 참여자들 간의 우여곡절 관계 속에서 상호간의 작용과 역작용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하의 글들에서는 오현정씨를 ‘단비’로 칭하고자 한다. 물론, 오현정씨가 현재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표라는 직함을 갖고 있기에 ‘오 대표’라고 표기할 수도 있겠으나, 동네 모임에서는 ‘단비’라는 별칭으로 통하고 있기에 이 글에서도 그 별칭을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개인의 사적 이름이 글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 적절치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지금까지의 글에서만 그 이름이 아홉 차례나 언급되었다)



단비 이야기


단비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 이력이 궁금해서 물었다. 단비는 87학번으로 소위 ‘학생 운동권’ 출신이다. 당시 운동권 출신들이 주로 그러하듯, 단비 역시 학생운동을 하다 보니 학점 미달 등의 이유로 학교를 오래 다니게 되었다. 졸업 후에는 정치조직과 교육재단의 설립을 지향하는 <포럼 2001>이라는 작은 단체에서 무급 반상근으로 일을 하기도 했다. 이 당시에는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는데, 인천에서 멀리 서울까지 출퇴근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출퇴근의 어려움보다 단비가 더욱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자신의 활동이 뭔가 ‘공중에 붕 떠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즉, 일반 사람들의 삶・생활 속에 녹아들지 못하는 운동은 뭔가 허전했던 것이다. 이 활동을 하면서 단비는 일반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운동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기 시작했고, 특별히 자녀들을 키우면서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교육에 대한 관심은 단비가 사대를 나왔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물론, 교육에 대한 관심도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그런데, 단비는 교사로서의 운동 즉 전교조 운동과 같은 것보다는 보다 대안적인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관심과 더불어 단비가 주목했던 것은 우리 역사 중 1945년 8.15 전후 전국에 건설된 ‘인민위원회’였다. 즉, 공동체 중심, 자치 중심의 조직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래서 처음에 관심을 많이 가진 것은 작은 도서관이었는데, 그러한 관심이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주부들과 함께 모임을 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된 중요한 계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2009년 3월부터 시작된 품앗이 역시 그러한 차원에서 오랫동안 꿈꿔오던 것이었다.

현재 단비는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인천 지역에서 풀뿌리운동을 표방하면서 조직통합을 이룬 <희망을 만드는 마을사람들>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중이다.



조직형성 과정


최초의 모임은 2003년에 시작한 아이들 독서교실이었다. 단비는 둘째가 태어난 후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처음 시작된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큰 애를 키울 때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식으로 활동을 했기 때문에 동네에 친구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아이도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좀 외로웠고, 같은 또래의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다. 공동육아도 하고 싶었지만, 인근에서는 발견하지 못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공동육아까지는 아니더라도 품앗이 정도는 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는 사람도 없는 아파트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고민을 좀 하다가 여름방학에 초등1-2년 아이들 독서교실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여 아파트 단지 내에 안내문을 붙였다. 개인적으로 10여명이나 올까 의아했지만, 다행히 15명 정도가 찾아왔다.

원래 아파트 단지에는 공고문을 붙이는 데에도 제한이 있다. 부녀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사 간 아파트 단지는 조그만 규모였는데, 다행히 부녀회장이 영리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잘 이해하여 공고문을 붙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이들 독서교실은 하루 90분 간 3일만 하기로 하고 진행되었다. 아이들 어머니들은 단비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독서교실이 끝난 후 참여한 아이들 어머니에게 연락해서 품앗이를 제안했는데, 다들 동의하지 않았다. 물론, 처음 공고문을 붙일 때에도 “함께 품앗이의 꿈을 키워가고 싶다”는 내용을 알렸다. 하지만, 정작 이런 제안을 하자, “당신은 우리에게 줄 것이 있지만, 우리는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다. 우리는 그런 것이 부담스럽다. 못 하겠다”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초등학생 자녀를 가진 어머니가 아니라 유아기의 자녀를 가진 어머니 세 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단비가 독서지도사인 줄 알고 찾아온 것이다. 이 분들은 자기 자녀들이 처음 모집 대상 연령과 맞지 않아 찾아오지 않았으나, 단비가 사람들과 그런 이야기를 한 것들을 알고 있었기에 찾아온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을 가르쳐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자기는 독서지도사가 아니니 함께 어린이 책 읽는 모임을 해보자고 제안하였다.

단비는 원래 그 지역의 <동화읽는 어른모임> 회원이었으나, 이 모임이 회원을 수시로 모집하는 것이 아니었고, 이 때가 신입회원 모집 시기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단비 집을 중심으로 일주일에 1회 정도의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주머니들이 모이다보니, 책 한 권을 읽더라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다. 즉, 아주머니들의 ‘건강한 수다’가 시작된 것이었으며, 참여자들은 그 과정 자체를 재미있어 했다.

이 아파트 단지는 구조가 재미있는데, 자로 동들이 배치되어 있고 그 가운데에 정자가 있었다. 이 정자에서는 항상 아주머니들이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동화를 읽는 모임이 시작되었고, 그 소문이 이 정자를 중심으로 아주머니들 사이에 퍼지자, 이에 관심이 있는 아주머니들이 계속해서 모임에 결합하게 되었다. 그래서 13명 정도의 아주머니들이 모여 모임을 지속하였다. 이렇게 모임이 시작된 시기가 2003년 10월쯤이었다.

함께 책을 읽는 주부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2004년 5월쯤 인천의 <굴포천 살리기 시민모임>에서 하천생태학교를 열었다. 이에 단비가 다른 회원들에게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도 이런 곳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설득하였다. 물론, 설득이 자연스럽게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단비는 다른 회원들에게 협박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는데, “생태학교에 가지 않는 회원은 우리 모임에서 뺄겨”라는 농담반 진담 반으로 강하게 참여를 권유하였다. 이에 회원들이 어린 자녀들을 ‘안고 고’ 하면서 하천생태학교에 참여하게 되었다.

12주 동안의 교육은 매우 의미가 있었다. 교육에 참여한 이들끼리도 친해졌고, 아주머니들도 수원천, 원흥이 방죽, 청주 무심천 등을 돌아보며 함께 나들이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학교를 통해 회원들은 아이들 교육과 환경・생태문제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즉, 단순히 자기 아이들에 대한 교육문제로 모인 주부들이 환경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모임에 참여한 것은 또 다른 성과도 있었는데, 그것은 같은 동네에 사는 다른 아주머니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분들은 인근에 있는 <기독교사회복지관>을 통해 하천생태학교에 참여하고 있었다. 기독교사회복지관에서는 사회복지사 한 분이 하천모니터링 팀을 꾸리기 위해 몇 분을 조직하였고, 이 분들이 이 학교에 참여한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회원들은 하천생태학교가 끝난 후 헤어지지 말고 책도 같이 읽고 주변에서부터 환경실천을 해보자는 결의를 하며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결성하였다. 이 때가 2004년 7월이다. 아이들 독서모임부터 시작해서 약 1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회원들은 온라인상에 까페를 개설하기도 했다. 또한 회원들은 한 달 회비를 3,000원씩 내기로 하였는데, 이는 모임 때 간식 등을 사거나, 송년모임, 가족 나들이를 가는 데에 주로 사용하였다. 이를 위해 총무를 두어 회비를 관리하였다.

모임은 2주에 한 번씩 열렸다. 주로 하는 일은 책 읽고 수다 떠는 것이다. 그러다가 하천학교를 통해 배운 것을 뭔가 실천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인근에 있는 공촌천이라는 하천 모니터링이다. 1-2주에 1회 정도 모니터링을 진행했는데, 모니터링을 하면서 한 동네에 사는 생태활동가와도 연결이 되고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이 모니터링 사업은 거의 1년 정도를 유지하였다. 이 활동을 통해 <굴포천 살리기 시민 모임>에서 공촌천 생태지도를 만드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모임의 내용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초기 활동은 크게 정기모임, 어린이사업과 회원사업 등으로 이루어졌다. 정기모임에서는 환경, 교육, 역사 등 관련 책을 읽고, 식품안전, 어린이와 책, 학교운영위원회의 역할과 관련한 강의도 함께 듣는 등으로 진행하였다. 어린이 사업으로, 아이들에게 놀이를 찾아주자는 취지로 동네 놀이터에서 전래놀이마당을 열기도 하고, 황토염색이나 좋은 책 전시를 부정기적으로 진행하였다. 그리고 매년 겨울방학이면 유치부, 초등부(저학년, 고학년)로 나누어서 독서교실 또는 생태 환경교실을 3일 동안 진행하였는데, 각 교실에는 22~28명 정도의 아이들이 참여하였다. 전체적으로는 70여명의 지역 아이들이 참여한 셈이다.

2005년에서 2006년에는 회원이 먼저 주도적으로 제안해서 한 달에 한 번 동네 하천인 공촌천 생태기행을 했고, 강화도 오리입식, 덕포진 교육박물관 나들이, 문화공연관람, 강화도 엠티 등에 아빠들과 함께 참여하면서 회원들의 친목도 돈독해졌다. 그러나 2006년에는 모임이 침체기를 겪으면서 그나마 월1회로 연장된 정기모임 외에는 별다른 활동들이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2007년 정기모임을 다시 월 2회로 늘리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월 2회의 모임 중 1회는 독서토론, 1회는 친환경 수세미, 대안 생리대, 천연비누 등을 만들며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하는 모임으로 운영했다. 그리고 2007년 10월부터 이웃과 환경을 생각하는 녹색마당과 같이 지역사회에 자신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다른 주민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사업도 비교적 정기적인 활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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